남한산성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대륙세력이 교체되는 중요한 시기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고 인조와 신하들이 강화도로 가려다 실패하고 성남의 남한산성에 고립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조선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유교성리학이 고착화 되었다는 것이고 유교는 가족관계라는 작은 유닛을 국가, 나아가 전 세계와 우주까지도 확대하는 유사종교에 가까운 학문이다. 조선사회는 글을 중시한 지식인사회였지만 유약하고 서민 생활은 원시인에 가까웠다.


조선이 청을 받아들일수 없는 것은 명과의 가족관계 때문이다. 도의를 어긋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왜 유고적인 관계를 조선왕조가 중요시 했나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종의 가족이라는 억압체계로 이루어진 유사 국가였기 때문이다.


명을 버리고 청의 실리를 추구하면 조선의 통치이념이 무너진다. 이는 그간의 역사를 부정하고 실리적인 목적으로 쿠테타나 다른 이데올로기가 수입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조선사회가 낙후된 것은 유교와 가족관계에 기반한 조선 왕조와 양반들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새로운 신진 세력인 상업, 공업, 실용세력들이 성장해서 정치세력화 하는것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했다. 김일성 북한체제처럼 계속해서 가족이라는 관념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켰다.이건희 이재용은 가족관계이다. 대부분의 재벌이 가족관계이다. 최순실 모녀도 가족관계, 유병언도 가족관계, 박정희와 그의 딸 등 현재에 이르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한국적인 가족관계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유교에 기반하는 것이다.
가족은 괴물이다. 가족은 모든것을 집어삼킨다. 한국인은 서구처럼 개인화될 필요가 있으며 개인주의에 기반한 팀이 한국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한 것은 정파로 나뉘어 정치싸움에 골몰하는 대신들때문이다. 현실을 버리고 관념과 한자어에 숨어 피신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것은 비참한 결과 뿐이다.

누가 그들을 동굴에 가두었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성장하는 중국과 아시아로 눈을돌린 러시아,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미국의 자국이기주의 그 속에서 한반도는 존재하고 있다. 
가족이 한국인들을 구원할 것인가? 



중국과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선 한국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보는 대표적인 나라가 과거에는 일본이었다면 지금은 중국과 미국인것 같다.

중국을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며 열등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결국 자본주의 제조업 국가 최 정점에 도달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동안에도 진취적인 실리가 아니라 과거와 명분에 사로잡혀 미래를 대응 하지 못하고 한국인들은 제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고

미국을 지나치게 선한 국가로 생각하고 모든것을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고 기성세대는 순진하게 생각한 것이다. 미국은 해양국가로서 성장하는 거대 아시아 지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에 영구 주둔해야 하며 떠오르는  아시아 국가들이 연합하지 못하게 견제해야만 한다. 결국 미국도 자국 이기주의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국가이며  나약한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메시아는 아닐 뿐더러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대장이다. 미래에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될 때 그 본색이 드러닐 것이다.

한반도는 주변 정세를 제대로 읽지못하고 분열되었을때 바로 외세에 의해 몰락하는 수천년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왜 아직도 현재와 미래를 있는 그대로 통찰력 있게 보지 못하고 과거의 무지를 되풀이 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부 분열이 일어나 국력이 소모된 상태에서 희생적 리더쉽이없으면 대륙과 해양 세력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은 결정나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드뇌 발뇌브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우면서 무려 35년간 건축, 포스트모더니즘, 영화평론, 복식, 미래사회연구, 생명복제분야, 망가등 무수한 영역에서 텍스트를 생산해 온 소스중에 소스이다.

미국적이라기 보다는 상당히 영국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로서 사실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계속해서 시대가 발전하면서 재 해석되고 재 평가된 대표적인 예술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해석가능한것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편집과 재개봉판들이 연속해서 개봉했다.

2049는 이러한 것들의 과대해석들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어떻게 보면 일반관객보다는 팬을 위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4차 산업혁명을 거쳐서 생명공학의 시대에 접어든 인류는 DNA를 해석하고 편집하고 복제하고 대량생산하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신이 타락하고 인간이 징벌했던 과거 역사처럼 인류가 타락하고 그것을 복제인간들이 혁명적 과업을 달성하려는 메타포를 지니고 있다.

외디푸스컴플렉스의 재 해석이며 창조와 복제 소유와 독립같은 아주 근본적인 딜레마를 다룬다. 이것은 종교에서 계속 되풀이 되었던 명제이고 사회적인 관습과도 연결되어있다. 

21세기는 디지털 시대이고 디지털시대에 오리지널리티는 없다. 모든 컨텐츠는 무료로 빛보다 빠르게 무제한으로 카피된다. 그것은 컨텐츠의 숙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빅데이터, 디지털 컨텐츠로 가상화했을때 그것이 무한 카피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오리지널리티는 메모리, 즉 기억에 의해서 쟁취된다. 그러나 그 기억마자 복제되고 편집될 수 있다면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오리지널리티의 쟁취는 개성화에서 나오며 그 개성화는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다고 보고 있다. 사랑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 생명은 희생속에서 잉태되는 것이다. 자기희생없는 생명복제는 무의미하다. 레플리칸트들이 회복하고자 하는 가치는 모성애이고 성모마리아와 치환된다. 하나의 유전공학적 돌연변이로서 새로운 종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리플리칸트들은 출산에 집착하고 모성애를 갈구하며 생명의 근원인 나무를 숭배한다.

하나의 돌연변이가 종으로서 인정받으려면 다윈에 따르면 번식이 가능해야 한다. 복제는 번식이 아니다. 번식은 돌연변이라는 랜덤함수를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희생같은 종교적 가치관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떠올리게도 하는 이 영화는 지나치게 예술적이다. 그래서 흥행에 실패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이영화는 원본이 35년간 소스역할을 해 왔듯이 다가오는 시대에도 충분히 소스역할을 하리라고 믿고 있다.


거대 홀로그램의 사용,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미래, 교통수단, 생명복제, 지구온난화, 식민지 건설, 미래 미국의 모습, 생명복제의 윤리관, 자본주의 비판등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무한한 소스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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