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mo








자율주행 택시는 서비스가 아니라 인간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이다. 

미래 자동차 주류는 전기에너지가 될 것이다. 이는 화석에너지에 비해 연비가 1/10수준이다. 그리고 드라이버에 대해서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또한 드라이버 좌석을 승차공간으로 둘 수도 있고 특성상 엔진공간이 남으므로 공간설계에 여유가 생긴다. 그 공간을 인공지능 카풀을 통해서 효율적으로 항상 채우거나 택배, 음식배달 서비스로 이용할 것이다. 신호위반이 없으므로 정부 세수가 줄어든다. 보험은 시간당 지불하는 식으로 변형되고 보험사의 수입은 줄어들것이다. 결국은 운송비가 극단적으로 저렴해 진다. 교통운임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간대와 서비스 내용, 탑승인원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한다.

운송비가 저렴해 지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것이며 파이는 더 커진다. 차를 움직이는 집처럼 이용할수도 있다. 주택가격은 더 비싸지는데 차량 이용비용은 저렴해진다. 결국 인간은 좋던 싫던 유목민처럼 변한다. IT기기는 클라우드 모바일화 되고 이런것들은 세계화를 더 부추긴다. 자동차는 생활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 많은 서비스들이 탄생하고 그것이 미래 산업과 스타트업들을 만들 것이다.

러프킨은 한계비용제로사회에서 사회 변혁은 물류, 에너지, 지식의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시프트가 생간다고 했다. 클라우드와 결합된 자동차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발생시키면서 세상을 가상화 매핑시킨다.

효율성이 극대화되면 주차공간은 전보다 적게 필요하고 차량생산량도 전보다는 적어질것이다. 대신 자동차의 수명은 짧아지고 이것이 자동차 산업과 차량을 더 진화시키는 촉매가 될 것이다. 트래픽잼도 전보다는 더 적어진다. 모든 차량이 100퍼센트 무인화 되면 교통신호등이 필요없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점만 있는것은 아니다. 트럭물류, 배달원, 택시운전수등의 직업들이 사라지고 이는 저소득층의 생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회불만세력이나 종교화되어 테러집단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노는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평화로워지는것이 아니라 불안해 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관심을 무엇으로 사로잡아야 하는가. 아마도 VR서비스일수도 있다. 지금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나중에는 극단적으로 저렴해지거나 무료화 될 것이다. 현재의 SNS처럼, 노동없는 사회는 가상세계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혹은 현실도피가 산업화 될 것이다.

좋던싫던 우리는 미래로 가고 있고 피할수는 없다. 살기위해서는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것과 빠르게 다가오는 현실은 항상 갈등을 일으킨다. 







현기차로 보는 한국경제 한국





 



현기차는 수소차를 택했는데 이유는 아마도 수소차는 기존의 자동차산업과 연합하던 정유 에너지회사가 선호하는 시스템이어서 기존의 지배 구조에서 그쪽을 밀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는  주차장이던 차고던 창고던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면 되지만 소수시스템은 기존의 정유소처럼 중소규모의 충전소가 필요하고 이것이 에너지회사가 수소에너지를 밀어준 이유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현기차의 영업이익이 2000억 수준인데 우버, 그랩, 리프트같은 공유경제 데이터 처리 회사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앞으로 자동차 회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동차는 내연기관인가 전자기기인가. 자동차의 에너지원은 화석연료인가 전기인가. 자동차는 제조업인가 서비스업인가. 자동차는 전통산업인가 첨단산업인가 자동차는 데이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인가 아니면 내연기관인가. 자동차는 이동공간인가 거주공간인가. 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해야 하는가 그럴필요가 없는가. 현기차는 국내기업인가 글로벌 기업인가. 사실은 이런것에 대한 고민이 먼저 있어야 현기차의 비젼과 앞날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현기차 내부적으로도 파벌이 심하다고 한다. 수소차, 세단, 고급화, 내연기관을 추구하는 구세력 VS 전기차, SUV, 해치백,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공유경제등을 도입하려는 신세력

강남의 땅값은 많이 올랐겠지만 한전부지를 인수하려는 기업 상부의 결정은  맞는 것이었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충분히 다른 자동차 기업들(재규어 랜드로버 크라이슬러 애스턴마틴등 영국, 미국 자동차 기업) 을 인수하거나 스타트업들에 투자할수도 있었다. 강성노조가 지배하는 제조업을 포기하고 부동산기업으로 나아가려는 행보인가? 굉장히 내부가 불투명하고 알쏭달쏭한 전형적인 한국 재벌 기업이다. 과연 어디로 가고있는 것인가. 만약 수백만명에게 직업적 위기가 온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앞날에 대한 비젼은 존재하는가? 자동차 기업인가 부동산 기업인가?

마치 한국의 미래를 보는것 같은 기분이다. 현기차의 위기는 한 기업의 위기라고 축소시키기 힘든 것이다.











하이퍼 리얼리티 Hyper reality




 원본을 복사해서 상품을 만들면 상품은 그 자체로의 생명력을 갖게 되고 현실을 압도한다는 것이 하이퍼리얼리티의 요약이다.


무제한으로 복제된 컨텐츠- 상품은 현실사회의 원본을 압도하는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그러면 원본은 소멸되거나 무기력해진다. 원래 원본이 어떠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이퍼리얼리티가 현실이다.

사람을 예로 들면 사람이 실제 어떤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미지가 어떠한가가 실제로는 훨씬 중요한 것이다.
복제된 이미지가 복제 사회에서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이퍼리얼리티에서 원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퍼리얼리티는 원본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새로운 현실이다.


동물원은 야생의 동물들을 전시한다.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이라는 것을 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불행한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동물들은 동물원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동물원이야 말로 야생이다. 굳이 가짜 환경이냐 진짜 환경이냐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동물원은 확대되면 인간이 동물이고 그들이 사는 사회가 동물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동물들을 관람하면서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그 망상은  인간 사회를 질서있게 유지하게 만드는 힘을 부여해 준다.

보들리야르가 말한 디즈니랜드의 존재 이유는 복제된 현실을 돈을 내고 즐김으로서 미국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틀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모든 신화는 상품이고 소비자를 위해 돈을 내면 존재한다는 생각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항하지 못하게 어렸을때부터 세뇌시키는 것이다. 디즈니랜드의 역할은 종교의 역할과 같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은 실재 존재를 통재하기위해 고도로 개발되어진 것이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진짜 사람과 관람객들은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에 괴로울 필요가 없다. 가짜야 말로 진짜이고 진짜는 사실 존재자체가 없었다. 디즈니랜드의 방식이야 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미국의 방식이고 그 룰을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배운다. 디즈니는 현대적인 신화이고 종교이며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사회의 암묵적인 룰을 배우고 거짓속에서 협동하는 법을 배운다. 미국에서 스포츠 교육을 어려서부터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코워킹 툴이다.



 신이 종교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도 같다. 신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신의 복제품이 신인 것이다. 신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슬람은 이 모순을 피하기 위해 신의 조형물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스템 유지를 위해서 숭배할 검은 돌덩어리와 책과 율법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도로 모순된 인간사회의 결함은 피할 수 없고 사회가 유지 발전 협동할 수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에서 이탈된다면 나약한 동물로 추락하고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왕따당하는 그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한국이 왜 이렇게 단일 민족과 국가에 국민들이 집착할까? 그것이 거짓말이고 신화도 개발된 것이라는 것은 외국인을 포함하여 어린아이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에서 이탈되는것이 두려운 것이다. 개인은 나약하고 집단은 강하다. 낙오자는 버려진다. 한국은 한국의 거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암묵적인 룰과 인공적인 협동 툴이 필요하다. 일본,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인공적인 사회이다. 자연에 대한 찬미를 강조하지만  부동산으로 개발만 할 뿐 실제로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그저 그 역할만 다 하면 되는것이다. 



가상현실 복제사회가 도래하면 현실은 외면받게 될 것이다.  복제사회에서 가상은 현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진짜 현실이다.  복제가 고도로 발달하게 되고 그 속에서 현실이 허우적거릴때 그들은 누군가의 먹이가 된다. 모두는 고통받고 굶주려 있다. 누가 디지털의 바다 속에서 먹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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